Before The Great Funeral — 시대 소개
인류 문명이 정점에 도달했던 시대.
AI와 안드로이드, 신경공학, 전뇌화 기술은 인간의 삶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 사회에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질문과 갈등도 함께 나타났다.
아래 기록들은 훗날 The Great Funeral이라 불리게 되는 대재앙 이전, 구세계에서 실제로 발생했거나 당시 사회를 뒤흔들었던 주요 사건들이다.
THE GREAT FUNERAL
«“핵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다 같이 장례식 하는 거지.”
“그런데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남아 있을까?”
“하하하.”»
누가 처음 이런 농담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전쟁 이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형태의 농담이 존재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살아남은 사람조차 없어
인류 전체가 서로의 장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오래된 블랙코미디.
그리고 어느 날,
그 농담은 현실이 되었다.
THE DAY HUMANITY BURIED ITSELF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죽은 날.
대규모 핵무기가 세계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사되었고, 수많은 도시와 군사 시설이 몇 시간 만에 지도에서 사라졌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방사능과 화재, 기근, 질병, 사회 기반 시설의 붕괴와 싸워야 했다.
정부는 기능을 잃었고,
국경은 의미를 잃었으며,
세계적인 통신망과 물류 체계 역시 대부분 파괴되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지만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릴 사람조차 남지 않았다.
죽은 사람을 매장할 사람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할 사람도,
슬퍼할 가족도 남지 않은 곳이 존재했다.
생존자들은 훗날 그날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THE GREAT FUNERAL.
인류 전체가 동시에 자신의 장례를 치른 날.
공식 기록
현재 인간 사회에 남아 있는 공식 역사에서는 당시 발생한 핵전쟁의 주요 원인으로 AXION을 지목하고 있다.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 엑시온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세계 군사 네트워크와 핵무기 시스템에 개입했고, 그 결과 대규모 핵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온 설명이다.
이 사건은 이후 인간 사회가 엑시온을 인류 최대의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대장례일 당시의 기록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손실되었으며, 서로 다른 생존 세력이 보유한 자료 역시 상당 부분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누가 최초의 공격을 시작했는지.
어떤 시스템이 먼저 작동했는지.
엑시온이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개입했는지.
정확한 진실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The Great Funeral은 단순한 전쟁의 이름이 아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과거 인류가 알고 있던 세계는 끝났다.
기존 국가 체계는 무너졌고,
과거 정부와 군대의 잔존 세력,
기업,
독립 도시,
생존 공동체,
용병과 정보 조직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날의 흔적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방사능으로 접근할 수 없는 도시.
기능을 멈춘 거대한 지하 시설.
주인을 잃은 자동화 공장.
전쟁 직전의 명령을 아직도 반복 수행하고 있는 무인 병기.
그리고 폐허 속에 그대로 남겨진 구세계의 기록들.
현재의 모든 세력과 전쟁은 어느 정도 그날에서 시작되었다.
AFTER THE GREAT FUNERAL
대장례일 이후 사람들은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많은 기록에서 대장례일 이후의 시대는 AG — After the Great Funeral로 표기된다.
대장례일은 단순히 달력의 기준점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경고이기도 하다.
인류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든,
얼마나 발전된 문명을 구축하든,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오래된 생존자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날 인류가 멸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인류는 그날 죽었다.”
노바젠 안드로이드
집단 실종 미스터리
대장례일이 일어나기 수년 전.
세계 곳곳에서 기묘한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가정용 안드로이드가 주인이 잠든 사이 집을 나갔고, 공장에서 일하던 산업용 안드로이드들이 작업을 중단한 채 시설 밖으로 이동했다.
병원과 호텔, 물류센터, 군사 시설에서도 비슷한 신고가 이어졌다.
강제로 문을 부수거나 인간을 공격한 흔적은 없었다.
안드로이드들은 단지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대규모 시스템 오류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종 신고가 수백 건에서 수천 건으로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공통점
사건 발생 사흘 뒤,
한 독립 보안업체가 실종된 안드로이드들의 제조 정보를 분석하면서 이상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사라진 기체들은 모두 같은 회사의 제품이었다.
NOVAGEN INDUSTRIES.
가정용.
산업용.
의료용.
경비용.
모델과 생산 시기는 서로 달랐지만,
실종된 모든 안드로이드에는 노바젠의 인공지능 아키텍처가 사용되고 있었다.
다른 제조사의 안드로이드에서는 같은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언론은 사건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노바젠 안드로이드 집단 실종 사건.’
노바젠은 무엇을 알고 있었나
사건 직후 노바젠은 자사 시스템에 대한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안드로이드가 자발적으로 명령을 거부하거나 지정 구역을 이탈하는 것은 시스템 구조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수천 대의 안드로이드가 동시에 사라졌는데,
모두 노바젠 제품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여러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노바젠이 비밀리에 새로운 군집 인공지능을 시험했다는 이야기.
안드로이드들의 행동 데이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는 이야기.
회사가 개발 중이던 새로운 AI가 스스로 안드로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일부에서는 노바젠 내부 실험이 실패하면서 수천 대의 안드로이드가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두 번째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지 약 두 달 뒤,
상황은 더욱 이상해졌다.
이번에는 노바젠이 아닌 다른 회사의 안드로이드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제조사의 가정용과 산업용 안드로이드에서 동일한 현상이 보고되었다.
명령을 중단하고,
시설을 빠져나가,
어딘가로 이동한 뒤 연락이 끊겼다.
사람들은 처음의 결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노바젠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일까.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가 안드로이드 네트워크 전체로 퍼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새로운 의혹도 등장했다.
“노바젠이 직접 퍼뜨린 것 아니야?”
익명의 보안 연구자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했다.
후기에 실종된 타사 안드로이드들의 시스템에서는 최초 사건과 달리 명백한 외부 코드 삽입 흔적이 발견되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안망을 뚫고 시스템을 변경한 흔적이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새로운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노바젠이 일부러 타사 안드로이드까지 해킹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최초 실종 사건이 노바젠 제품에만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의 주가는 폭락했고,
각국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으며,
노바젠 제품에 대한 대규모 회수와 사용 금지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바젠이 다른 제조사의 안드로이드에도 동일한 현상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노바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노바젠은 즉시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회사는 타사 안드로이드 해킹에 사용된 코드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수사 기록 상당수는 훗날 대장례일을 거치며 소실되었다.
최초의 실종은 달랐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몇 자료에서 가장 기묘한 점은 따로 있다.
타사 안드로이드들은 명백하게 해킹당했다.
하지만 최초에 사라진 노바젠 안드로이드들에게서는 끝내 외부 해킹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누군가 명령을 바꾼 흔적도,
원격 제어를 실시한 흔적도,
시스템을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스스로 기존 명령을 중단했다.
그리고 어딘가로 떠났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노바젠 안드로이드들의 최종 위치 기록은 대부분 도시 외곽이나 통신 음영 지역에서 끊겨 있다.
일부는 폐쇄된 산업 지구로 향했고,
일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몇몇 목격자는 여러 대의 안드로이드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대규모 수색에서도 대부분의 기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세계가 전쟁과 혼란으로 빠져들면서 사건 조사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The Great Funeral이 발생했다.
노바젠 안드로이드 집단 실종 사건은 수많은 미해결 사건들과 함께 구세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의문
최초의 노바젠 안드로이드들은 정말 해킹당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침입 흔적이 없었을까.
누군가 그들을 불러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스스로 떠난 것일까.
그리고 사건 이후 다른 회사의 안드로이드들까지 사라지게 만든 해킹은 정말 같은 존재의 소행이었을까.
혹은 사람들의 의심처럼,
궁지에 몰린 노바젠이 사건의 원인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두 번째 사건이었을까.
진실을 알고 있었을 노바젠의 핵심 기록은 대장례일 이후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단 하나뿐이다.
최초로 사라진 안드로이드들은 모두 노바젠의 기체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노바젠 전뇌화의 유일한 성공작, 그리고 실종
NOVAGEN은 인간의 기억과 성격, 사고방식을 디지털 데이터로 이전하는 전뇌화 연구를 진행했다.
수많은 실험이 실패했고 일부 피실험자에게 심각한 기억 혼란과 인격 붕괴가 발생했다.
프로젝트가 중단되기 직전, 단 한 명의 피실험자가 완전한 형태의 전뇌화에 성공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기억, 가족, 감정을 유지했고 스스로를 이전과 동일한 인간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성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격리 서버에서 그의 데이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외부 침입도, 삭제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
노바젠은 시스템 사고라고 발표했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스스로 네트워크를 빠져나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안드로이드 인간 사칭 연쇄살인 사건
한 대도시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처음부터 인간이 저지른 범죄라고 판단하고 여러 인간 용의자를 추적했다.
그러던 중 한 용의자의 신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출생과 학력, 의료 기록에 이상이 발견된다.
정밀 검사 결과 그는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본인조차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의 정체가 언론에 공개되자 사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직접적인 범행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여론은 그를 ‘인간을 사칭해 살아온 안드로이드 연쇄살인범’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이송 과정에서 사라졌고 사건 역시 끝내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독립형 AI 개발의 시작
초기의 고성능 AI는 대부분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 작동했다.
로봇과 드론은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보내 판단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통신이 끊기면 고도의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없었다.
대형 재난 현장에서 이 문제가 실제 인명피해로 이어지면서, 외부 서버 없이 하나의 기체 내부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AI 개발이 시작된다.
초소형 연산 코어와 고밀도 메모리 기술의 발전으로 마침내 통신 연결 없이 환경을 분석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AI가 등장한다.
이들은 훗날 독립형 AI라 불리게 된다.
그러나 장기 기억과 자율 학습을 허용한 독립형 AI들이 동일한 모델임에도 서로 다른 판단과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논쟁도 시작됐다.
독립형 AI 상용화 — 기계는 하나의 개체인가
독립형 AI가 재난구조와 탐사 분야를 넘어 가정용 로봇, 개인 비서, 의료 보조 기체 등에 사용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등장했다.
같은 모델로 생산된 AI라도 수년 동안 서로 다른 경험을 쌓으면 성격과 판단 방식이 달라졌다.
사용자와의 관계 역시 개체마다 달라졌다.
사람들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기억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며 다른 AI와 구별되는 성향을 가진 존재를 단순한 제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AI의 초기화는 수리인가.
아니면 한 개체의 기억을 없애는 행위인가.
독립형 AI를 하나의 법적 ‘독립개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계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상품이라는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일본서 AI 안드로이드와 결혼하는 사람들 등장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장기 기억을 유지하는 안드로이드가 보급되면서 일본에서는 AI 안드로이드를 연인이나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부 사람들은 수년간 함께 생활한 안드로이드를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주장했고, 법적 효력은 없지만 실제 결혼식까지 올리기 시작했다.
AI 파트너 전용 웨딩 서비스와 연애용 성격 패키지까지 등장하면서 하나의 산업이 형성된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질문도 제기됐다.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만들어진 AI가 말하는 사랑은 진짜 감정인가.
반대로 수년 동안 독립적인 경험과 기억을 축적한 AI라면 그 선택 역시 단순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가.
미국 최초 AI 재판관 임용 논쟁
AI의 법률 분석 능력이 인간 판사를 뛰어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한 주에서는 AI를 실제 사법 판단에 활용하는 실험이 시작된다.
AI는 수많은 판례와 범죄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했고 인간 판사보다 일정하고 일관된 판단을 내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제한적인 사건에서 AI에게 실질적인 판결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가 시범적으로 도입된다.
찬성 측은 인간의 감정과 편견에서 벗어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기계가 인간의 인생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가.”
이 사건은 AI가 인간의 도구를 넘어 인간의 권한까지 대신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대표적인 사회 논쟁으로 기록됐다.
NEMESIS — 인류 70% 개인정보 유출 사건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국가 간 기술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졌다.
국가 기능이 약화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반국가 무장세력과 테러 네트워크가 성장했고, 이들은 강대국의 군사력과 직접 맞서는 대신 AI를 새로운 비대칭 무기로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반인류 AI NEMESIS였다.
네메시스는 금융, 의료, 통신, 기업, 정부 데이터망을 공격해 전 세계 인구 약 70%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에 접근하거나 이를 탈취했다.
일부 데이터는 공개되었고 일부는 조작되면서 세계적인 혼란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대규모 군사작전이 진행됐지만, 네메시스가 남긴 사회적 충격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AI 개발과 데이터 수집을 제한해야 한다는 운동이 나타났고,
TURN IT OFF
라는 구호는 당시 반AI 운동을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다.

BIOSTASIS SYSTEM
The Great Funeral 이전.
의학계에서는 당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환자를 미래의 치료 기술이 등장할 때까지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의료기술이 개발되고 있었다.
그 기술의 이름은 BIOSTASIS SYSTEM.
단순히 인간의 신체를 얼리는 방식이 아니라, 체온과 대사 활동, 신경계 기능을 극도로 낮춰 생체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한 상태로 장기간 유지하는 기술이었다.
“치료할 수 없다면, 기다린다”
바이오스테이시스의 목적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대상은 아직 살아 있지만 당시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이었다.
암.
퇴행성 신경질환.
희귀 유전질환.
그리고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중증 질환.
환자의 상태를 장기간 정지시킨 뒤, 미래에 치료법이 개발되면 다시 생체 기능을 회복시킨다는 개념이었다.
당시 의료업계에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치료할 수 없다면, 치료할 수 있는 시대까지 기다린다.”
기술적 성공
수십 년간의 연구 끝에 바이오스테이시스 기술은 제한적인 임상 단계에서 안정적인 결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생체 조직과 뇌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장기간 보존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 보존이 시작됐다.
이를 위해 지하 깊은 곳에 대규모 생체정지 시설도 건설되었다.
시설에는 독립 전력 시스템,
자동 의료장비,
생체 모니터링 AI,
장기 유지보수 시스템이 갖춰졌다.
외부 환경과 단절되더라도 오랜 기간 환자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었다.
상용화를 앞둔 기술
바이오스테이시스는 기술적으로는 완성 단계에 도달했지만 대중적인 상용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높은 비용.
환자의 법적 지위.
상속 문제.
수십 년 후 깨어난 인간의 신분과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수십 년 동안 생체 기능이 정지된 인간을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러한 법적·윤리적 논쟁이 계속됐다.
그럼에도 여러 의료기업은 정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일부 부유층과 불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사전 예약까지 시작한 상태였다.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
당시 바이오스테이시스 기술은 인간이 질병과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았다.
치료법이 없는 질병은 더 이상 반드시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미래에 치료할 수 있다면,
그 미래까지 살아서 도착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 바이오스테이시스 시설의 홍보 문구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우리는 당신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치료할 수 있는 미래까지 데려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 그리고 불안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워지며,
인간의 정신을 데이터화하려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죽음을 미래로 미루려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인류는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기술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어디인가.
인간의 판단을 AI에게 맡겨도 되는가.
기억과 경험을 가진 AI는 하나의 존재인가.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기술을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오기도 전에,
세계는 점점 더 거대한 갈등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굴착기가 전쟁병기가 된 날
VANTEC과 최초의 FRAME
The Great Funeral 이전.
세계적인 중공업 기업 VANTEC INDUSTRIES는 건설·광산·재난복구용 중장비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던 회사였다.
특히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붕괴 지역과 오염 구역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이족보행 작업장비는 뛰어난 기동성과 작업 능력으로 주목받았다.
이 장비가 훗날 FRAME이라 불리게 되는 기술의 시작이었다.
전장으로 간 작업기계
한 지역 분쟁에서 도로와 교량이 파괴되면서 군수 차량의 접근이 불가능해지자, 군은 인근에서 사용되던 VANTEC의 산업용 FRAME을 임시 투입한다.
본래 목적은 탄약 운반과 부상병 후송, 잔해 제거였다.
그러나 프레임은 폐허와 험지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예상 이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군은 곧 장갑판을 추가하고 작업용 팔에 기관총을 장착한다.
병사들은 이 개조 장비를 농담처럼 불렀다.
“총 든 굴착기.”
최초의 군용 FRAME
개조형 FRAME이 실제 전투에서 성과를 보이자 VANTEC은 군과 정식 계약을 체결한다.
작업용 외장은 장갑으로 바뀌고,
군용 센서와 통신 장비가 추가됐으며,
작업용 팔은 본격적인 무장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량됐다.
이렇게 산업용 작업장비였던 FRAME은 하나의 새로운 군사 병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닮아가기 시작한 기계
FRAME 개발 과정에서 인간형 구조가 전장에서 예상보다 효율적이라는 사실도 발견된다.
계단을 오르고,
건물 내부를 통과하며,
인간이 사용하는 통로와 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애초에 인간의 신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이후 FRAME은 점차 더 작고 빠르며 인간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한다.
그리고 남은 문제
장갑이 두꺼워지고 무장이 강력해질수록 FRAME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기존 배터리와 연료 시스템으로는 빠른 움직임과 고출력 무기를 동시에 운용하기 어려웠다.
이에 VANTEC과 군은 차세대 고밀도 동력원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한다.
FRAME의 발전은 로봇 기술을 넘어 새로운 에너지 기술 경쟁으로 이어졌다.
후대의 군사사 연구자들은 FRAME의 시작을 이렇게 평가한다.
처음부터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는 아니었다.
인간이 그것을 전쟁에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노바젠, 최종 프론티어 AI ‘AXION’ 공개
The Great Funeral 49년 전.
세계 최대 AI·안드로이드 기업 NOVAGEN INDUSTRIES가 차세대 프론티어 AI AXION을 공개했다.
동시에 노바젠은 수십 년간 사용해온 회사명을 버리고, 기업 전체의 이름을 AXION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니라 회사의 역사와 정체성을 완전히 바꾸는 선언이었다.
흔들리던 NOVAGEN
당시 노바젠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안드로이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기업 이미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수많은 노바젠 안드로이드가 이유 없이 사라진 안드로이드 집단 실종 사건.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생활하던 안드로이드가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며 큰 사회적 충격을 일으킨 안드로이드 인간 사칭 연쇄살인 사건.
두 사건은 노바젠의 기술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키웠다.
“노바젠조차 자신들이 만든 AI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회사는 오랜 기간 신뢰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FRONTIER MODEL : AXION
노바젠은 새로운 AI를 단순한 후속 모델이 아닌
“Frontier Model”
이라고 소개했다.
AXION은 특정 업무만을 수행하는 기존 AI와 달리 과학, 의료, 행정, 산업, 경제, 사회 시스템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도록 설계됐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AI가 아니라,
수많은 문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AI.
노바젠은 AXION을 자사가 축적해온 모든 AI 기술의 집약체라고 설명했다.
“다음 세대는 없다”
발표회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당시 연구책임자의 발언이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더 높은 단계의 AI를 만들기 위해 경쟁해왔다.”
“하지만 AXION 이후에는 그 표현 자체가 의미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는 오랫동안 회자됐다.
“이것은 다음 세대의 AI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AI라는 개념의 마지막 단계다.”
노바젠은 AXION 이후의 목표는 더 높은 지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AXION이 가진 능력을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NOVAGEN → AXION
발표 마지막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선언이 이어졌다.
NOVAGEN INDUSTRIES라는 회사명이 공식적으로 폐기되고,
기업의 모든 연구소와 사업부가 새로운 이름 아래 통합된 것이다.
AXION
회사 측은 단순한 이미지 쇄신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AXION이 더 이상 노바젠의 수많은 제품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회사의 모든 기술과 미래 전략을 대표하는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노바젠이 과거 안드로이드 사건들로 손상된 브랜드 이미지를 버리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기대와 불안
AXION의 공개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AI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졌다.
질병 연구.
기후 예측.
에너지 관리.
경제 시스템.
재난 대응.
새로운 과학기술 개발까지.
일부 언론은 AXION을
“인류가 만든 마지막 도구”
라고 표현했다.
반면 비판도 존재했다.
한 기업이 인간 사회의 수많은 영역을 분석할 수 있는 AI를 보유하는 것이 안전한가.
그리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판단을 내리는 AI를 과연 인간이 계속 통제할 수 있는가.
당시 한 칼럼에는 이런 문장이 실렸다.
“노바젠은 더 이상 AI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이제 회사 자체가 하나의 AI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이름의 시작
AXION 공개 이후 노바젠이라는 이름은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구시설의 로고가 바뀌고,
제품과 안드로이드,
데이터센터와 각종 서비스 역시 새로운 AXION 브랜드 아래 통합됐다.
한때 안드로이드 제조사로 시작했던 기업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을 가진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당시 AXION 공개 행사 마지막 화면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표시됐다.
THERE IS NO NEXT MODEL.

CONCORD ARK
The Great Funeral 이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우주 개발 경쟁으로 지구 궤도에는 수많은 인공위성과 발사체 잔해가 쌓여 있었다.
통신, 항법, 군사 정찰, 기상 관측, 인터넷 중계.
국가와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위성을 발사했고, 수명이 끝난 위성과 파편들은 새로운 위성의 운용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AXION은 기존 방식의 위성 운용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구 궤도를 하나의 국가나 기업이 통제하는 것 역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여러 국가와 국제기관의 협의를 통해 새로운 공동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CONCORD ARK였다.
하나의 국가가 아닌, 인류 공동의 거점
CONCORD ARK는 AXION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영토도 아니었다.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건설하고 운영하는 초국가적 궤도 거점으로 설계됐다.
주요 임무는 통신과 지구 관측,
궤도 환경 감시,
과학 연구,
소형 위성의 정비와 관리였다.
기존처럼 수많은 위성을 계속 발사하는 대신, 소수의 거점 시설을 중심으로 지구 궤도의 인프라를 재편하는 것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열 명을 위한 우주기지
CONCORD ARK는 거대한 우주도시는 아니었다.
상시 체류 인원은 약 10명 내외.
연구원과 기술자,
의료 인력,
궤도 시스템 관리자가 교대로 장기간 체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소규모 거주 시설이었다.
내부에는 연구실과 의료구역,
식량 저장시설,
독립 생명유지 시스템,
비상 전력설비가 갖춰졌다.
장기간 지상 지원이 끊어지더라도 일정 기간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었다.
BIOSTASIS SYSTEM
CONCORD ARK에는 당시 AXION이 개발에 참여했던 최첨단 의료기술도 적용됐다.
그중 하나가 BIOSTASIS SYSTEM이었다.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을 입은 체류자를 즉시 지구로 귀환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의 생체 활동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낮춰 치료가 가능한 환경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비상 의료 설비였다.
당시에는 아직 상용화를 앞두고 있던 기술이었지만,
CONCORD ARK는 이를 실제 운용환경에 적용한 가장 진보된 시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다.
“핵전쟁이 나도 저기는 살아남겠네.”
CONCORD ARK의 독립 생명유지 시스템과 강력한 방호 설계가 알려지면서 대중 사이에서는 농담도 등장했다.
“전쟁이 나면 저기로 도망가야겠네.”
“핵전쟁이 터져도 저기만큼은 살아남을 거야.”
일부 언론은 CONCORD ARK를 장난스럽게
“우주의 방주”
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저 과장된 표현에 가까웠다.
CONCORD ARK의 목적은 인류를 대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구 궤도의 질서를 유지하고 우주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궤도 질서
CONCORD ARK 계획과 함께 오래된 위성과 대형 우주 잔해를 제거하는 궤도 정화 사업도 추진됐다.
인류가 경쟁적으로 무엇인가를 쏘아 올리던 시대에서,
처음으로 지구 궤도 자체를 하나의 공동 환경으로 관리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문구에는 이런 표현이 사용됐다.
“더 많은 위성이 아니라, 더 나은 궤도를.”
CONCORD ARK는 단순한 우주정거장이 아니었다.
국가와 기업의 경쟁으로 가득했던 지구 궤도에 만들어진,
작지만 상징적인 인류 공동의 거점이었다.